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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 역사인물20 - 박봉진 목사 운영자 2021-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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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 역사인물>

20. 박봉진 목사

박봉진 목사는 성결교회 최초의 순교자다. 

 

그는 경기도 평택 출생했다. 16세까지 한학을 공부하다 부자의 꿈을 품고 17세에 수원으로 가서 직장을 알아보려 다니다가 어느 교회 앞에서 전도하는 청년을 만나 전도를 받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청년 박봉진은 금은방의 견습공으로, 금은세공의 기술을 익힌 후 고향 평택에 금은방 가게를 개설한 후 가게에 오는 사람을 전도하다가 1920년대 초 평택에 설립된 성결교회에서 집사가 되었다. 그는 1923년 새 예배당을 지을 때 건축비의 거의 전액을 헌금했고, 당시 발행된 성결교 신앙잡지 <활천>을 통해 믿음을 키워나갔다. 

 

1924년 10월, 평택교회에서 열린 이명직 목사 부흥회에서 큰 은혜를 받았고, 1928년 수원성결교회를 개척한 이성봉 전도사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수원에 70평 규모의 백화점을 개설한 그는 평택, 천안 등 7개 지역에 지점을 개설하는 등 30대에 큰 부자가 됐지만 40대에 사업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기도 중 사업을 정리하게 됐다.

 

그후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한 박 목사는 재학 중 장호원교회를 개척했으며 1938년 목사안수를 받음과 동시에 여주교회를 거쳐 1940년 철원교회로 파송 받았다. 1943년 5월, 전국교역자 일제 검속 때 경찰서에 구금되어 모진 심문을 받던 중 재림은 물론 신사참배까지 반대한다고 하여 더욱 심한 고문을 받았다.

 

초를 당하면서 하나님 외에는 다른신이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다가 혼절하기를 몇 차례당했다. 고춧가루를 풀어 먹이고 천장에 달아 매질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그해 말 성결교회가 해산되어 모든 성직자들이 석방됐으나 그는 신사참배 문제로 석방되지 않고 계속 심문과 고문을 받으며 신앙투쟁을 하다 1943년 8월 10일 가족에게 만신창이가 된 몸이 인계되고 8월 15일 새벽 병원에서 소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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