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결교회 역사인물18-강시영 목사 | 운영자 | 2021-03-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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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 역사인물>
18. 강시영 목사
강시영목사는 1879년 7월 23일, 평남 용강에서 출생했다. 동향으로 김상준 목사의 소개로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하였고 1913년 제2회 졸업생으로 박제원과 최재은과 함께 졸업하였다.
수양생 시절에 아현교회 개척 멤버가 되었으며 졸업 후 초대 담임교역자로 사역하면서 성서학원 사감으로 취임하였다. 1914년 박제원이 개척한 김천교회에 파송되어 진력함으로 시장 중앙에 예배당을 신축할 수 있었다.
이후 1918년에는 밀양교회로 파송받고 부지런히 전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 운동이 전개되던 때 강 전도사의 고향 용강 출신 애국인사들이 밀양으로 내려와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는데 김상준도 함께 하였다. 김상준과 강시영 전도사는 이 운동의 주모자로 체포되어 평양 형무소에 수감되어 고초를 겪을 때 길보른 선교사에 신원보증으로 출옥하였다.
이후 1920년 강시영 전도사는 경성성서학원 교수와 사감으로 헌신하였다. 1921년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성결교회 모교회인 무교동교회 주임이 되었다. 경기지방 감리목사(당시 5개 지방 경기 안성 통영 북청 대전지방)와 무교동교회 담임을 겸직하여 교회들을 순회하고 감독하다가 1929년 대구봉산교회 주임되어 경북지방 감리목사를 겸하여 사역하였다. 대구 덕산정에서 노방전도를 하며 교회가 성장되자 예배당을 건축하여 1930년 준공 헌당하였다. 1936년 영남지방 순회목사로 활동하여 영남지방 성경학교를 설립하여 인재들을 양성하였으며 재차 대구봉산교회에 1937년 부임하였다.
해방과 함께 대구교회를 재건하고1945년 9월 원로목사로 추대되었다. 4년 뒤인 1949년 9월 6일 성결운동을 전개하느라 고단하게 지낸 모든 생애를 마치고 주의 부르심을 입었다. 강시영 목사는 구령활동은 물론 영선사업에도 남다른 헌신을 하였으며 행정가로 교육가로도 활동하였고 독립운동 등에도 쓰임을 받았던 영남지역 성결운동의 선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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