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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 역사인물17 - 박현명 목사 운영자 2021-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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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 역사인물>

17. 박현명 목사

박현명목사는 1903년 7월 8일 함남 원산 북청 임자동의 선비 가정에서 출생하여 한학을 익히며 자랐다. 

 

당시 보통학교 입학을 하려면 단발령을 따라야 했기에 부모가 허락하지 않았으나, 스스로 단발하고 입학할 정도로 배움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그는 북청성결교회에서 신앙을 시작하여 어느 사경회 때에 중생을 체험하게 되었으며, 15세에 이철순양과 혼인하였다. 

 

이후 분가하여 경성으로 이주해왔고 19세 때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하였다. 1925년 졸업하고 독립문교회에서 부임전도사로 활동하고 2년후 주임전도사가 되었으며 그렇게 사역을 시작한지 4년 후 목사안수를 받자 일본 선교사로 파송받아 6년동안 16번이나 이주하면서 구령사역에 열중하였다. 거기서 낳은 아들이 박상증 목사(아름다운 재단)다. 

 

그리고 1934년 경성성서학원 교수로 귀국하기까지 성결운동가로 전심진력하였다. 해방 후 1946년 제1대 총회장이 되어 재건된 성결교회를 바로 세우고 견실하게 성장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다. 

 

1950년 6월 25일 민족의 비극인 전란이 발생하여 모두가 피신할 때 교단을 사수하고자 남아있다가 들이닥친 인민군에 의해 납북당했다. 당시 박현명은 서울신학대학교의 전신인 서울신학교 구내 사택에 거주했는데, 서울이 조선인민군에게 점령되어 있던 8월 23일 서울 종로구의에서 열린 기독교도연맹회의에 송창근 등과 함께 참석했다가 한꺼번에 실종되어 납북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에서 1950년대 중반 또는 1960년대 초반까지 생존했거나 공식 활동을 했다는 풍문이 있을 뿐, 이후 소식은 알 수 없다. 

 

성결교단은 박현명을 순교자로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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